이 름

제 목

편지로 여는 세상 14집

『편지로 여는 세상』제14집
2012년 5월 9일
한국편지가족 지음 | 이지출판
내용 : 한국편지가족 전국 9개 지회 회원들 편지글 80편

<편지글>
삶의 전환점에 등대가 되어주신 고마운 소장님께

고의순

우수도 지났고 경칩이 코앞인데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은 수그러들 기세가 보이질 않습니다. 3일 후면, 소장님과 영원한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 심경은 한겨울 엄동설한입니다.
아주 특별하게 이어진 인연이었기에 하루하루 혼신의 힘을 다해 보좌해 드리고 싶었는데 소중하고 값진 시간들이 이렇게 짧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몸과 마음에 상처가 크신 소장님이시기에 섣불리 떠나지 마시라는 말을 건넬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함께 근무하는 동안 따뜻한 말 한마디 올리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후회스럽습니다.
벌써 옛날 얘기처럼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지난날을 더듬어 봅니다.
그 당시 저는 17년 가까이 다니던 사무실에 위탁회사가 바뀌면서 딱 3일의 말미를 받고 해고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들아이의 친구 엄마가 대표회장직을 맡으면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듯 말 한마디 못한 채 사무실을 나와야 했지요.
사실 아들아이의 친구 엄마는 대표회장직을 맡기 전에 통장 일을 했었는데 저랑 꽤나 친한 사이였습니다. 동사무소에 관련된 서류며 공고·방송·하다못해 주민 서명을 받는 일까지 크고 작은 일들 모두 제가 도맡아 하다보니 저에게 늘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어떤 연유로 제게 그토록 엄청난 시련을 주어야만 했었는지 아직까지도 그 답은 미궁 속에 빠진 미스터리입니다.
한동안 저는 믿었던 지인의 배신으로 억울함을 삭이지 못해 오랜 시간 방황을 했지요. 내성적인 성격 탓에 겉으로 표출을 하지 못했으니 몰골은 말이 아니게 상해 버렸고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다고 확신했던 저였기에 차디찬 현실을 직시하기에 제 가슴이 너무도 작았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구직활동을 하던 중 소장님의 경리채용구인 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소장님께 이력서를 보내드리고 기다리던 하루하루는 초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보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자 저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장님께 메일을 보내 드렸지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한 번만 더 검토해 주실 것을 당부 드렸습니다. 어쩜 그것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남에게 어떤 부탁한번 못해 본 제 자신의 크나큰 반전이었다고나 할 수 있지요.
다음날 저녁, 소장님께서는 제게 전화를 주셨고 사무실 내부의 애로사항들을 말씀해 주시며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지요. 뭐든 할 수 있다고 맡겨만 달라고 자신만만했던 대담한 기억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서류심사에서 제외된 상태였는데 소장님의 특별배려로 면접을 볼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지요.
면접이 있던 날, 소장님을 처음 뵙는 순간 저의 마음은 참으로 편안했어요. 소장님의 첫인상이 하회탈을 연상하듯 따뜻했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지인처럼 평온한 느낌을 받았어요.
4명의 경리 후보자와 소장님을 비롯한 4분의 대표님들의 까다로운 면접은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특히 제 옆에 앉아 있던 지은씨가 어찌나 말도 잘하고 똑 소리 나던지 말 한마디 못하고 면접이 끝날까봐 가슴은 콩닥콩닥 마구 방망이질 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뭔가 말은 했던 것 같은데 면접관들의 마음이 모두 지은씨 쪽으로 간 것 같아 마음은 큰 돌덩이를 안은 듯 심난했습니다.
면접을 끝내고 저희는 그 주변 저수지 벤치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 보는 낯선 경쟁자들이었지만 같은 일을 하다보니 금방 친해져 서로의 휴대폰 번호를 주고받았고 자주 만나서 정보도 교환할 것을 약속했지요. 알고 보니 지은씨는 직장이 있었고 구직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없더군요. 이런 지은씨에게 합격통보를 받게 된다면 내게 양보해 줄 수 없겠느냐고 감히 물었지요. 그것이 반칙이고 참으로 치졸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당시 전 왜 이곳에 목을 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함께 면접을 본 동료들까지도 어느새 제 마음을 읽었는지 한마디씩 거드니 지은씨도 쾌히 승낙을 해 주더군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걸려온 합격소식은 벅찬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소장님은 동대표 집까지 찾아가셔서 1시간 넘게 설득 끝에 저를 선택하셨다며 축하의 말을 잊지 않으셨지요.
생판 모르는 저를 무조건 믿어주시던 소장님의 고마운 마음에 한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여 업무파악에 돌입했고 소장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말씀이 떨어지기 전에 몸과 마음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업무를 익히는 한 달 동안은 오로지 일만을 생각하며 사생활을 접어두었지요. 입술이 부르트고 코에서는 멀건 선지가 쏟아졌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저를 인정해 주시는 든든한 소장님이 옆에 계셨으니 가슴속은 언제나 콧노래가 한창인 봄이었으니까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이 차츰 미소로 바뀌었고 신뢰와 믿음은 순식간에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소장님 고맙습니다. 소장님이 아니셨더라면 제가 감히 이런 행복을 꿈꿀 수 있었을까요? 바늘구멍만큼이나 좁디좁은 취업전선에서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소장님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라고 사료됩니다. 항상 나직한 미소로 그 흔한 잔소리 한번 안하시며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소장님의 따뜻한 사랑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제 인생의 전환점에 환한 등대가 되어주신 소장님의 고마운 마음 두고두고 생각하겠습니다. 짧은 만남 속에 정들자 이별이라고 가슴은 아프지만 소장님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이 먼저이니 안타까운 마음 또한 접겠습니다. 부디 빠른 시일 내로 예전처럼 건강이 호전되셔서 좋은 모습으로 꼭 다시 뵙기를 소망합니다.
소장님을 떠나보내고 한동안 사무실에 덩그러니 내 던져진 허전한 기분을 떨칠 수 없겠지요? 구석구석에 소장님의 흔적이 생각날 텐데 그 마음을 어찌 달래야할지 또 하루해가 지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다시 간절하게 바라 건데 우리 소장님께 기쁨 듬뿍, 행복 가득, 사랑과 희망으로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쌀쌀한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언제나 행운이 함께하시길 두 손 모아 소망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2년 2월 27일
소장님을 아주 많이 존경하는 고의순 드림

(작성일 : 2013년 02월 21일 (21:29), 조회수 : 1132, IP : 1.235.3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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