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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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편지로 여는 세상 6집

고마운 올케에게

박 갑 순 (전북지회)

올케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되는 내 습성 탓인지 자네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려니 호칭이 막막해 어제 밤에는 국어사전을 펼쳐 보았다네. '오빠나 남동생의 아내를 지칭하는 말'로 나와 있더군. 오빠의 아내에겐 우리가 쉽게 '새언니'라고 부르면 더욱 정감 있고 사랑스러운 말인 듯 싶은데 남동생의 아내인 자네를 부를 수 있는 예쁘고 다정한, 내 맘에 쏙 드는 말이 떠오르질 않아. 내 평소 부르는 말로 그냥 '상아 엄마'라고 하려네. 이해해줄 거지?
그 날도 나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행사관계로 친구의 화원에 들렸었네. 급히 흉화 주문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보다 더 급한 아가씨가 오더니 내 친구인 화원 주인에게 웃는 얼굴로 무어라 말을 하고 나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어. 내가 평소에 맘에 들어 하는 스타일의 여성이었지. 순간 욕심이 나는 거야. 그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는 내 동생이 떠오르면서 '꽃집 친구에게 언니라고 하는 거 보니까 분명 친구에게 물어 보면 그 아가씨에 대해 알수 있을 테고 제발 결혼하지 말았어라...'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거야.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였어. 친구에게 물어 보니 미스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여고 동창의 동생이라네. 얼마나 기뻤는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나 혼자 김칫국물을 마셔도 분수가 있지 양푼으로 너덧 그릇은 마셨을 거야. 숨가쁘게 달려왔던 행사준비는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지고 의자를 마주놓고 앉아 그 친구를 다르쳤지. 우리 동생과 한번 만나게 해보자고...
그렇게 해서 자네와 동생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자네도 절대로 시집가지 않겠다고 버티며 선보는 것도 거절하였었다는데 우리 동생 선보라는 말에는 슬그머니 마음이 움직여 그 자리에 나오게 되었고, 동생의 끈질긴 구애로 지금은 예쁜 상아와 잘 생긴 연오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주부가 되어 있지!
살면서 가끔 이러저러한 연유로 서로의 마음을 다 헤아려주지 못할 때는 내 가슴이 먼저 철렁 내려앉곤 해. 어찌됐건 동생과 인연을 맺어준 건 나이지 않은가. 자네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잘 지내면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마음 아픈 상황들이 발생하면 난 커다란 죄인이 되고 마는 신세인 거지.
결혼이라는 것이 남자와 여자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집안의 그 많은 사람들과의 결합이다 보니 때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을 것일세. 맏며느리 자리가 아니니 큰 부담 없을 거라며 중매를 섰었는데 오빠가 아직 혼자이다 보니 자네가 맏며느리뿐 아니라 지금 현재 외며느리로 어깨가 무거우리라 짐작하네. 내 딴에는 시누이 노릇하지 않으려 많이 애쓰고 있는데 자네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네. 그래도 '시'자가 들어간 음식도 먹기 싫다는 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사소한 것이라도 시누이 티 내지 않으려 앞으로도 더 열심히 노력함세. 혹 그동안이라도 내게 섭섭한 마음 있었다면 잊어 주고 솔직하게 말해 주면 더욱 고맙겠네.
지난 가을 어머니 생신 때 어린아이 둘을 돌보기도 힘들텐데 정성스럽게 음식을 마련해서 온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게 준비한 자네를 보며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어. 요즘 젊은 주부들은 대게 음식점에 가서 한끼 식사 대접하면 그만인 것으로 생각하며 그것도 잘 하는 일이라 여길 텐데 자네는 직접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여 어머니 생신 상을 차려 드리고 또 자네 집에서 여러 날을 편안히 지내다 가시게 하니 요즘 보기 드문 며느리야.
도 우리 조카들 교육은 어떻고? 태교부터 신경을 쓰더니 낳아서도 온갖 정성을 들여 머리맡에 항상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잠을 재울 때마다 좋은 책을 읽어 주더니 상아는 네 살 때부터 책을 줄줄 읽어대니 정말 장하네. 남들은 비싼 돈 들여가며 교육을 시켜서 그리 만들지 몰라도 자네는 자네의 사랑과 노력만으로 아이를 그렇게 똑똑하고 예쁘게 잘 기르고 있으니 나무랄 데가 없지. 연오는 요즘 잘 나가는 권상우 뺨칠 정도로 잘 생긴 인물로 낳아서 잘 기르고 있고... 정말 우리 집안의 보물이야.
엄마의 성격이 비슷한 나는 종종 엄마와 대화 도중 의견 충돌이 있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런다네.
" 나는 딸인 너보다 며느리인 상아 엄마가 더 편하고 좋더라".
그 말을 들으며 자네가 얼마나 어머니께 마음 써 드리며 공손하게 잘 대해 드리는지 알 수가 있었네. 엄마가 딸보다 며느리를 더 좋아하시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행여라도 자네가 너무 힘들면 안 된다네.
지난번 아버지 제사 때도 자네는 많은 음식들을 미리 자네 집에서 준비를 해 왔지. 그리고 돌아올 때 남은 음식을 우리 아이들이 잘 먹는다고 따로 챙겨 주어서 너무 고마웠어. 그러면서도 자네는 그랬지? 팥죽을 끓여 먹었는데 우리 엄마가 자네 친정아버지도 한 그릇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을 때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고. 우리는 똑같은 처지의 여인이라네. 자네가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과 내가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염려하는 마음이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자네 처음 결혼했을 때도 말해지만 나는 자네와 친자매처럼 지내고 싶어. 자네야 여자 형제들이 많아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여자 형제가 없다 보니 시누 올케가 아니라 정말로 친자매로 살고 싶어. 그래서 호칭도 언니라고 부르라 했는데 어머니가 형님이라고 부르랬다고 형님이라 부를 때 왠지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아 조금 서운했지만 또 어른의 말씀을 따르는 자네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리기로 했지.
넉넉하지 못한 우리 집에 시집와서 알뜰하게 살림 잘하고 어머니도 마음 편하게 해 드리며 효도하는 자네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고맙네. 앞으로도 우리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며 풍족하진 않지만 소박한 가운데 넘쳐 나는 사랑으로 행복한 가족이 되도록 노력하세.

2004년 1월
시누이가

(작성일 : 2005년 07월 26일 (09:27), 조회수 : 2610, IP : 211.105.7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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