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름

부산경남 황미숙

제 목

고맙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여든 네 살의 연세임에도 은발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는 아버지였습니다.

팔순이 되던 날, 만성신경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불편해지자 지팡이가 아닌

전동스쿠터를 선택하시고는 어디든 자유롭게 씽씽 다니셨습니다.

딸이 보고 싶으면 엄궁에서 남포동까지 전동스쿠터를 타고 오셔서

“밥 먹자. 지금 나올 수 있나?” 하셨고,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도 전동스쿠터와 함께 하셨습니다.

전동스쿠터는 4남 2녀의 자식들보다 더 나은 아버지의 수족이었습니다.

평소에 고혈압이나 당뇨 등 지병도 없으셨고,

매일 아침, 돋보기를 들이지 않고도 신문을 읽으셨습니다.

게다가 은발머리 밑에 검은머리가 나는 걸 보며 거뜬히 백수를 누리실 줄 알았습니다.

어느 자식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홀로서기를 하던 아버지,

그렇게 당당하고 씩씩한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셔서 몇 시간 만에 떠나시는 걸 뵈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백구두를 즐겨 신으셨던 아버지께서 귀천하던 날은 밤새 많은 눈이 내려서

지상의 길조차 어디론가 사라진 듯 했습니다.

산과 들이 온통 상복을 입었구나./ 그러니 내일 아침 햇님이 조상할 때면/

처마 끝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겠지.

이 시를 쓴 김삿갓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저의 슬픔을 함께 하시려고 어렵고 힘든 눈길 헤치고 늦은 밤에 달려오신 문우들,

조문 오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신 여러 선생님들.

진심어린 편지와 메시지로 조의를 표해주신 많은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다행히 장지로 가던 날엔 눈이 녹아서 여수 봉두시립묘원에 있는 어머니 곁에

아버지를 편안히 잘 모셨습니다.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게 도리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드림을 용서하시고,

앞으로 선생님의 경조사에 연락주시면 반드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겠습니다.

2013년 1월 6일

황미숙 올림

(작성일 : 2013년 01월 06일 (15:52), 조회수 : 399, IP : 58.231.198.248)

박명자 (2013년 01월 07일 11:18, IP:222.109.231.245)

참 정갈하고 건강하신 아버님이셨네요.
이별을 예상하지 못해 더 안타까웠겠지만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마음이 더 아팠겠어요.
효성이 지극하신 감사님의 글이 애잔한 사부곡처럼 들립니다.
좋은 곳에서 내려다보시며 지켜주실 테니 어서 슬픔을 거두십시오.
삼가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강병숙/서울 (2013년 01월 08일 13:43, IP:175.123.20.93)

황미숙 감사님, 큰일 당해 고생하셨습니다. 아버님이 효성스런 따님을 생각해 눈이 뽀얀 세상에 모든 근심 다묻고 홀연히 떠나신것 같습니다.갑자기 당한 일이라 슬픔이 더 커셨죠. 산자의 몫은 어서 슬픔을 거두고 내일을 헤처나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버님 더 좋은곳 가시게 어서 몸추스러십시오.

황점숙/전북 (2013년 01월 11일 21:08, IP:14.55.193.167)

아버지와 정을 오래 나누셨네요.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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